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제식 소총- AK 시리즈 그 역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현재 매일마다, 우크라이나 영토에서는 치고받는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번에 우크라이나의 제식 소총인 AKM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았는데, 이번 포스팅에서는
더욱 깊이 들어가 AK라는 총이 어떻게 탄생하였고, 창시자는 누구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우리는 AK라는 소총을 알기에 먼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라는 사람의 인생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총이야기를 하는데 왜 그 사람의 인생까지 알아야 하느냐?
그 이유는 바로 AK소총에 칼라시니코프의 인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칼라시니코프의 인생작이 바로 AK(칼라시니코프) 돌격소총이기 때문이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이 알타이 지방에서 태어났다. 알타이 지방은 시베리아 서남쪽의 지방이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원래 소련의 부농 집안 출신의 아들이었는데,
소련의 농업 개혁 당시 스탈린이 펼친 강제 이주 정책으로 지금의 알타이 지방으로 옮겨와 살게 되었다.
알타이 지방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산과 나무밖에 없는 척박한 그냥 시골 그 자체였다.
유년시절 칼라시니코프는 기계공학이외에는 재능이 없었다고 전해진다.(운명이었던 건가)
처음에는 농사 집안 출신답게 농사도 해보고 수영도 해보고 스키도 타보았지만 하나도 잘했던 게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기계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하며 재능을 꽃피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총기 관련 일을 하지는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칼라시니코프는 T-34 전차병으로 전투에 참전한다.
(칼라시니코프는 키가 매우 작고 기계공학도 였기 때문에, 전차병으로 참전하였다.)
그렇게 T-34를 타고 전투를 참가한 칼라시니코프는
브리얀스크 전투 당시 전차 해치를 열고 나오다 날아오는 포탄 파편에 맞아 어깨에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
그렇게 요양을 위해 후방으로 이송되던 중 갑작스러운 독일군의 기습으로 운송병들은 도망치며
칼라시니코프는 동료 부상병들과 함께 버려진다.
그렇게 유명한 일화가 탄생한다.
그 당시 칼라시니코프를 운송하던 운송 소대의 소대장은 독일군이 사용하던 총을 보고는
우리도 저런 총이 있었으면 독일군쯤은 쉽게 잡았을 텐데.. 라며 한탄하며 도망가는 것을 듣고는
칼라시니코프는 독일군이 사용하던 총보다 더 뛰어난 총을 만들어서 복수하겠다고 결심한다.
이 일화는 그가 조국을 수호하는 돌격소총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요인들 중 하나가 된다.
다행히도 칼라시니코프는 어깨만 다친 상태여서 후에 합류한 지원군들과 탈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칼라시니코프는 다행히 후방병원으로 무사히 이송되었고 후방지역에서 미국이 지원한 미국제 무기인
톰슨 기관단총, M1 그리스 건 등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조국을 지키는 돌격소총을 개발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총기 공부에 매진한다.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자신에 고향 알타이 지방에 내려가 칼라시니코프는 총기 하나를 완성한다.
그렇게 칼라시니코프가 처음으로 완성한 총이 PPK-42년 형이다.
(포스팅 초반에 링크를 걸어두었다. 궁금하면 함께 보길 권장한다.)
이 총은 정식으로 소련의 제식 화기로 채택되지는 못 하였다. 그렇지만 후에 AK-47을 만들 때 중요한 경험이 된다.
그러다 1945년 2차세계대전이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이 항복하며 막을 내린다.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소련의 동구권 세력과 미국 중심의 서방 세계로 재편되며 냉전체제로 돌입하였다.
소련은 서방 국가들이 돌격소총 개발에 들어갔다는 첩보가 들어오자,
하루빨리 돌격소총을 완성하라고 자국의 총기 개발자들에게 요구하였다.
이에 총기 개발자중 한 명이었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1946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총기의 프로토타입형인
칼라시니코프 돌격소총 설계안을 모스크바 조병창에 보낸다.
(조병창이란 총기를 설계하고 만드는 공장같은거라고 보면된다.)
이에 소련은 칼라시니코프 돌격 소총의 여러 가지 테스트를 진행하였다.
(아래 영상은테스트 장면을 재현한 영화의 일부 장면이다.)
테스트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칼라시니코프는 소련 역사상 최초로 고등학교만 졸업한 총기 제작자가 설계한 총이
소련의 제식 소총으로 채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칼라시니코프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바로 전쟁에 참전해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
칼라시니코프는 이 소식을 1년 늦게 전해 듣고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이후 여러 가지의 개량을 거쳐 AK-47이라는 정식 명칭으로 이 돌격소총을 조병창에서 정식 생산하게 된다.
이후 AK-47을 개량하여 프레스 방식(한 번에 찍어내는 방식, 생산력이 늘어난 버전)이 AKM이고
이후 현대화와 여러 가지 개량화를 거친 총기들이 AKM,AK-74 라는 이름으로 생산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검은색 계열의 AK소총은 74년도에 개량을 한 것이다.
현재 러시아 국방군은 이러한 현대 개량형 AK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정식 채택하여 운용 중이다.
우크라이나군은 현재 AKM, AK-47등 있는 소총들을 다 끌어와서 운용하고 있다.
(총기가 현저히 부족하다고 한다.)
오늘은 AK소총의 역사와 AK를 개발한 칼라시니코프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다.
좋은 정보가 되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