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역사 이야기

달력의 역사를 아시나요? feat. 유럽의 사라진 10일

Master L(마스터 리) 2022. 4. 6.

2월은 왜 28일일까? 혹시 알고 계신가요?
2월은 왜 28일일까? 혹시 알고 계신가요?

 

달력은 일상생활 즉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수이죠,

만약 달력이 없다면 일상생활 속에서 약속을 잡을 수 없을 것이고

 

또한 한순간에 달력이 없어진다면 사회에 엄청난 혼란이 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달력의 역사를 알고 계신가요?

 

모르고 있다면 오늘 알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달력의 탄생부터 알아봅시다.

1. 1년이 365일이라는 것을 알아낸 이집트인들

달력의 처음 시작은 아주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략 기원전(B.C)으로 가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위치는 피라미드를 가지고 있는 파라오의 국가 이집트로 함께 가보도록 하죠.

피라미드를 소유하고 있는 인류의 4대 문명 이집트- 달력은 이곳에서 최초로 탄생하였다.
피라미드를 소유하고 있는 인류의 4대 문명 이집트- 달력은 이곳에서 최초로 탄생하였다.

과거 고대 이집트 인들은 천문지식을 끝없이 탐구하고 연구했습니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 인들은 수학과 천문학 능력이 아주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들은 왜 천문학을 연구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먹고사는 것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문제가 그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들의 농사의 터전이었던 나일강이라는 강이 자꾸 정기적으로 범람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인들은 고대부터 나일강 주변의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일정 시기가 되면 자꾸 강물이 불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물이 넘치는 현상은 정기적으로 발생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오랫동안 경험하면서 관찰과 기록을 통하여 먹고살기 위해 난관을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범람이란 강이 평소의 수위보다 높이 상승해 수해를 입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집트 인들은 농사를 제대로 짓기 위해서는 나일강의 범람 시기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나일강이 정기적으로 범람하는 시기를 계산하기 위해 달력을 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집트 인들은 1년이 365일이라는 것을 찾아내었고, 이러한 상식은 이집트 상인들에 의해 서양으로 전파됩니다.

 

2. 위대한 정복자의 또 다른 업적 달력 제작

이번에는 조금 가까운 고대 로마 시대로 함께 가봅시다. 로마의 달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고대 로마 시대 당시에도 달력은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각자 그 기준이 모호하고 제각각이었습니다.

(로마력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였다.)

 

실제로 달력을 주관하던 제관이라는 직책이 존재하였는데, 제관들은 당시 집권하던 정무관이나 집정관들의

집권을 앞당기기 위해 달력을 조작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한 해의 길이가 불규칙하였습니다.

또한 집정관들이 세금을 더 걷기 위해서 제관에게 명령하여 1년의 길이를 늘이기도 줄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당시 제관들은 뇌물을 받았다고도 전해집니다.)

 

이러한 로마력은 로마 시대 우리가 제일 잘 아는 인물이 이러한 폐단을 고치게 됩니다.

그 인물이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입니다.

로마의 독재 집정관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의 독재 집정관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의 위대한 정복자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군사 능력인 지휘력도 뛰어났지만 그에 못지않게

로마의 내정에도 엄청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여러 가지 개혁을 시행하였다.)(달력 제정도 그의 개혁의 일환이었다.)

 

카이사르는 위에서 설명한 제관들이 로마의 달력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폐단을 바로잡기 위하여

 

B.C 46년 로마의 속주였던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였던 소시게네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새로운 달력을 제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이름을 딴 로마의 달력 "율리우스력"입니다. 

 

율리우스력은 1년의 길이를 365일과 4시간으로 정하고 4년마다 하루를 더하여 366일로 정했습니다.

1,3,5,7,9,11월을 31일로 정하고 2월을 제외한 나머지 달을 30일로 정했습니다. 

오늘날의 달력과 매우 유사한 형태입니다.

 

카이사르는 그의 집정관 취임을 앞당기기 위하여 꼼수를 쓰게 되는데, 

당시 로마에서는 새해를 3월로 규정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 달력을 만들 때 그는 새해를 1월로 변경하여 자신의 집정관 취임을 2개월 앞당기게 됩니다. (아, 폐단을 없애기는 하겠는데 나까지는 못 참지 ㅋㅋ)(그도 사람인지라 집정관 취임은 못 참았던 걸로..)

 

또한, 퀸틸리우스라고 불리던 7월을 자신이 태어난 달을 기념하기 위하여 율리우스로 변경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영어로 7월을 July(쥴라이)로 부르게 된 유래입니다.

 

이때 제정된 율리우스력은 약 1,500년 동안 서양에서 사용됩니다. 초대 크리스트교회에서 

율리우스력을 사용하였고, 크리스트교의 전파에 따라 율리우스력도 여러 지역에 나누어 전파됩니다.

 

그런데 율리우스력에는 1가지 문제가 존재하였습니다. 

 

율리우스력의 1년은 365.25일인데 실제 1년은 365.2422일이라 1년에 약 11분 정도의 차이가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사후 천문학이 발달하며 인류는 1년의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는 데 성공하였다.)

(11분이라니 뭔 차이야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실제로 이러한 오차가 카이사르의 시대 이후로 쌓이자 10일이라는 차이가 발생하였습니다.)

 

3. 교황의 달력 개정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 달력 완성

당시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우스 13세는 당시 크리스트교의 최대 기념일이었던 부활절의 기념일을 맞추기 위하여

달력을 개정하기로 명령합니다.

 

크리스트교는 부활절과 같은 기념일들을 명확히 규정하여 챙겨야 하였는데, 자꾸 날짜가 달라지니 날짜를 맞추기 위하여 당시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우스 13세는 기념일들을 명확히 챙기기 위해 율리우스력을 개정하기로 합니다.

그레고리우스 13세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 교황

그는 이러한 오차를 바로잡기 위하여 기존의 달력이었던 율리우스력에서 10일 정도의 시간을 삭제하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그는 365.2422일을 기준으로 새로운 달력을 제정하였고, 

달력의 이름을 그의 이름을 붙여 그레고리력으로 부르게 됩니다. 

 

(따라서 유럽의 역사에서 1582년 10월 4일부터 10월 14일의 기간을 사라진 10일이라고 불립니다.)

 

그렇게 율리우스력은 10일이 사라지고 그레고리력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탄생합니다.

이 달력이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달력입니다.

 

영국에서는 1752년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였고, 독일 지역은 1775년에 받아들였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19세기 들어 그레고리력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 그레고리력을 정식적인 달력으로 받아들였을까요?

 

우리나라는 1895년 을미개혁 당시 서양 달력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고,

이웃 나라인 중국도 1912년에 도입하여 1949년 서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달력의 역사입니다.

오늘도 도움이 되셨나요? 새로운 지식 잘 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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