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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속 김훈 최질의 반란 그리고 실제 역사에서는?"

Master L(마스터 리) 2024. 2. 19.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속 상장군 김훈과 상장군 최질의 모습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속 상장군 김훈과 상장군 최질의 모습

 

오늘도 요즘 제가 빠져있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요즘 역사왜곡과 여러 가지 논란으로 말은 많지만 그나마 이 정도 퀄리티를 뽑아내는

KBS에 무궁한 감사를표합니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서 요즘 드라마 속 화재인 두 상장군 김훈과 최질의 난을 정리하면서 포스팅 시작 해 보겠습니다.

 

1. 김훈과 최질이 난을 일으키기 전 두 사람의 인생과 업적들

 

왜 그들이 난을 일으켰는지 그리고 상장군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는 두 사람이 이러한 행동을 하였는지 이유를 알아야겠죠?

 

그럼 두 사람의 인생을 먼저 알아봅시다.

 

먼저 상장군 김훈입니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김훈의 모습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상장군 김훈의 모습

 

 

김훈은 2차 고려거란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죠.

 

그의 생애는 다양한 사건과 전투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훈은 1010년에 발생한 제2차 고려거란전쟁 중 거란이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강조가 이끄는 고려군을 크게 패배시키고 진격해 왔을 당시 김훈은 완항령에서 군사를 매복해 거란군을 잠시 퇴각시키는 전공을 세웠습니다.

 

이 전공으로 30만의 고려군이 재정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 주었습니다.

 

그의 공로로 인해 김훈은 상장군으로 승진하였습니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최질의 모습

 

 

다음은 최질장군입니다. 최질장군도 2차 고려거란전쟁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죠.

 

1010년에 벌어진 제2차 고려거란전쟁에서 최질은 통주성에서 중랑장의 직책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홍숙과 함께 거란군에 대항하여 통주성을 끝까지 지키는 공을 세웠죠.

 

당시 거란군은 통주성에 사신을 보내 항복할 것을 권유하였는데, 이에 맞서 끝까지 통주성을 사수하는 전공을 세우죠.

이와 같은 활약을 통해 전 후 현종이 상장군의 직책을 내립니다.

 

 

2. 그렇다면 왜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아니 상장군이나 되는 사람들이 왜 반란을 일으킨 걸까요? 뭐가 불만이었던 걸까요?

복합적인 이유들이 쌓여 화가 터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무관직에만 제수되고 문관직은 얻지 못하자 불만을 가지게 된 것.

 

(고려는 문관의 나라였습니다. 과거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무관들은 오를 수 있는 벼슬의 높이가 제한이 있었습니다.)

 

거란과의 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궁핍해지면서 무관들이 자신들의 땅을 빼앗은 일에 분노를 느낀 영업전 사건.

 

 

황보유의와 장연우 같은 문신들이 중추원사를 건의하여 무관들의 영업전을 거두어 녹봉에 충당하게 했습니다.

 

 

고려거란 전쟁속 장연우(좌), 황보유의(우)
고려거란 전쟁속 장연우(좌), 황보유의(우)

 

 

무관들은 매우 불공평하다고 여겼습니다.

 

결국 김훈과 최질은 황보유의와 장연우 같은 문신들이 자신들의 땅을 빼앗은 일로 휘하에 문관들을 집결 시킵니다.

 

이에 김훈과 최질은 궁궐에 난입하고 자신들의 난에 동조하지 않은 무관들을 포박하여 죽게 만들었습니다.

 

현종은 황보유의와 장연우의 유배를 김훈과 최질에게서 건의받았고, 이를 윤허하였습니다.

 

이 반란을 통해 무신들은 고려의 정권을 잡는 결과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3. 현종의 계책과 김훈 최질의 난 진압 그리고 교훈

 

음력 1015년 2월 무렵, 화주에서 방어사를, 서경에서 장서기를 하며 사람들의 인심을 얻은 이자림이 있었습니다. 이자림은 중추원의 일직인 김맹에게 "왕께서는 어찌 운몽지유를 본받지 않으시는가"라며 계책을 제안했습니다. 김맹이 이 계책을 현종에게 알리자, 현종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따른 계책으로 현종은 서경성으로 김훈과 최질 그리고 무관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게 됩니다.

서경의 장락궁에서 연회를 베푸는 현종 그렇게 김훈과 최질의 난은 종료되었다
서경의 장락궁에서 연회를 베푸는 현종 그렇게 김훈과 최질의 난은 종료되었다.

 

현종은 서경으로 행차하였고, 음력 1015년 3월 14일에는 서경의 장락궁에서 잔치를 베풀어 무관들을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자림은 무관들을 모두 붙잡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김훈, 최질, 이협, 최가정, 석방현, 이섬, 김정열, 효암, 임맹, 최구 등 19명이 처형되었으며, 그중에는 김훈과 최질의 일파였던 최구도 포함되었습니다. 다만, 처형된 19명의 아들 및 친형제들의 등용문만 막았고, 다른 가족들은 방면하였습니다.

 

이는 현종이 자비를 베푼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됩니다.

 

김훈과 최질의 난은 현종이 직접 겪어본 반란 사태였으며, 

 

현종은 무력으로 왕의 권위에 도전한 사람들을 처벌하여 앞으로의 폐단을 막았습니다. 또한 현종은 무신들의 공을 인정하고 대우를 격상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는 현종이 김훈과 최질의 난을 교훈삼은 것으로 보입니다.

김훈과 최질의 난은 2차 고려거란전쟁과 3차 고려거란전쟁 사이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현종의 대응과 조치를 통해 고려의 안정과 군사력을 유지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사건입니다.

 

앞으로의 드라마 내용이 더 기대가 되네요 

이상으로 포스팅 마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KBS 대하사극드라마 고려거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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